
PROFILE
신동에서 젊은 거장으로-
임동혁은 7세의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10세 때 러시아로 이주,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임동혁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2위에 입상하면서부터였다. 형인 임동민은 1위에, 임동혁은 2위에 나란히 입상하면서 두 형제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 부조니 콩쿠르와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이듬해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1위 수상과 더불어 솔로 리사이틀 상, 오케스트라 상, 프랑스 작곡가 해석 상, 파리음악원 학생 상, 마담 가비파스키에 상 등 5개 상을 휩쓸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편파 판정에 불복, 수상을 거부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클래식계에 핫 이슈를 몰고 왔지만, 2005년 제 15회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3위를 수상하며 그에 관한 일부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또한 2007년 6월, 제1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분에서 1위 없는 공동 4위를 수상하며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임동혁은 7세의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하여 10세 때 러시아로 이주,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에서 수학하였다. 임동혁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6년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2위에 입상하면서부터였다. 형인 임동민은 1위에, 임동혁은 2위에 나란히 입상하면서 두 형제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0년, 부조니 콩쿠르와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이듬해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에서 1위 수상과 더불어 솔로 리사이틀 상, 오케스트라 상, 프랑스 작곡가 해석 상, 파리음악원 학생 상, 마담 가비파스키에 상 등 5개 상을 휩쓸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3년에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편파 판정에 불복, 수상을 거부하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클래식계에 핫 이슈를 몰고 왔지만, 2005년 제 15회 국제 쇼팽 콩쿠르에서 3위를 수상하며 그에 관한 일부 우려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또한 2007년 6월, 제1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분에서 1위 없는 공동 4위를 수상하며 세계 3대 콩쿠르를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유럽, 북미,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임동혁은 뉴욕 링컨 센터, 런던 위그모어 홀, 파리 살 플레옐,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도쿄 산토리홀 등 전세계 주요 공연장 무대에 올랐다. 또한 베르비에 페스티벌, 쇼팽 페스티벌, 루가노 페스티벌, 아르헤리치 함부르크 페스티벌 등 다수의 페스티벌에서 연주했다. 샤를 뒤투아가 지휘한 NHK 오케스트라, 정명훈이 이끄는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유리 테미르카노프 지휘의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이르지 벨로흘라벡 지휘의 BBC 심포니, 마이클 틸슨 토마스 지휘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등 세계 정상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임동혁은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에 입학하여 레프 나우모프를 사사하였고, 그는 “임동혁은 황금 손을 가졌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그 후,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아리 바르디 사사, 그리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엠마누엘 엑스를 사사하였다. 임동혁은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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